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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 디지털 메시

AI는 동물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_ 수의학 AI를 만들기로 한 이유

  • 5월 5일
  • 4분 분량

[이 글은 춘옥컴퍼니 대표인 허찬 CEO가 어떤 문제의식에서 춘옥컴퍼니가 출발했는지를 공유하기 위해 개인의 시선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이후 글에서는 이 철학이 실제 기술과 시스템으로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를 이어서 다룰 예정입니다.


수의사로 15년을 일했다. 동물암센터를 오픈하었고, 지금은 하루 200건 가까운 진료 데이터가 쌓이는 동물병원 그룹을 운영하고 있다. 그 사이 AI는 진료실의 일상에 점점 가까워졌다. 의무기록을 쓰고, 검사 결과를 해석하고, 보호자에게 보낼 안내문을 다듬는 일까지— 어느새 상용 LLM이 작은 동료가 되어가고 있었다.


최근 몇 년 사이 수의학 AI(Veterinary AI)의 동물 의료 AI에 대한 관심은 보호자 뿐 아니라 수의 생태계 전체에서 빠르게 늘어가고 있다.

하지만 실제 진료 현장에서는 단순한 기술 도입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리고 어느 날, 한 가지 패턴이 눈에 들어왔다.

AI는 동물 환자에게 너무 쉽게 안락사를 권한다는 것이었다.

고령, 고위험, 예후 불량—

이런 조건이 입력되면 AI는 치료 옵션을 충분히 펼쳐 보이기 전에 "인도적 안락사를 보호자와 논의해보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내놓는다. 같은 임상적 위중도를 가진 사람 환자에 대해 AI가 그렇게 답하는 일은 없다.


사람 케이스에서 AI는 가능한 치료 옵션을 끝까지 나열하고, 가족과의 대화를 권하고, 완화의료를 언급하고, 환자의 의사를 존중하라고 한다. 죽음은 가장 마지막에, 가장 신중하게 등장한다.


그러나 동물에게는 너무 빨리 등장한다. 마치 그것이 "합리적 알고리즘"의 자연스러운 출력값인 것처럼. 같은 윤리적 무게에 대해 인간에게는 삶을, 동물에게는 죽음을 먼저 권하는 이 비대칭은 어디서 오는가.


그 답변들 앞에서 멈춘 순간이 출발점이었다.



1. AI에게 동물은 '생체신호의 집합'이었다

대형 언어모델은 인터넷에 쌓인 인간의 글로 학습된다.

그 안에서 인간의 존엄성은 수천 년의 철학, 의학윤리, 종교, 법률 텍스트로 두텁게 코드화되어 있다.


  • 환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 죽음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 고통을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지,

인의학에는 그 모든 층위가 있다.


춘옥컴퍼니 허찬 대표
춘옥컴퍼니 허찬 대표
하지만 동물에는 없다.

정확히 말하면, 동물에 관한 데이터는 "생물학적 객체"로서의 데이터가 압도적이다.

체중, 심박수, 혈액검사 수치, 종양의 직경. 동물을 "누군가의 가족", "고통을 느끼는 주체", "존엄성을 가진 생명"으로 다룬 텍스트는 상대적으로 빈약하다. 그래서 AI는 동물 환자를 다룰 때 자연스럽게 데이터 시트처럼 다룬다. 의도가 나쁜 것이 아니라, 학습한 것이 그것뿐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똑똑한 AI가 아니다. 동물의 존엄성을 학습한 AI다.


2. 동물의 존엄성: 데카르트에서 피터 싱어까지

현대 과학의 사고 틀은 서양철학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그리고 그 철학사 속에서 동물의 위치는 오랫동안 모호했다.


데카르트 — 동물은 기계다

데카르트는 동물을 정교한 자동기계(automaton)로 보았다. 영혼도 의식도 없고, 고통은 단지 기계적 반응일 뿐이라고 했다. 이 관점은 이후 수백 년 동안 동물실험과 산업적 축산을 정당화하는 철학적 기반이 되었다.


칸트 — 동물은 인간을 위한 도구다

칸트는 한 걸음 나아갔지만, 그것은 동물을 위한 한 걸음은 아니었다. 그는 동물 학대를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그 이유는 "동물에게 잔인한 사람은 인간에게도 잔인해진다"는 것이었다. 동물 보호의 이유가 동물 자신이 아니라 인간의 도덕적 자기보존이었던 셈이다.


피터 싱어 — 고통은 그 자체로 도덕적 사실이다

20세기에 와서야 피터 싱어는 단순하지만 결정적인 질문을 던졌다. "이 존재는 고통을 느끼는가?" 만약 고통을 느낀다면, 그 고통은 인간의 고통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고통을 무시하는 것은 "종차별주의(speciesism)"이며, 이는 인종차별이나 성차별과 같은 구조의 오류라고 그는 말했다.


싱어 이후, 동물의 존엄성은 더 이상 "인간에게 좋은 것"의 부산물이 아니다.

고통을 느끼는 존재라는 사실 그 자체가 도덕적 무게를 가진다.

수의학을 위한 AI는 데카르트의 시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그것은 출발선부터 싱어의 자리에 서 있어야 한다.



3. 수의학 데이터의 구조적 빈곤

문제는 철학에서만 끝나지 않는다. 데이터의 양과 질에서도 수의학은 인의학과 비교가 어렵다.


인의학에서 RCT(무작위대조시험)는 수천, 수만 명의 환자를 모집한다. PubMed에는 매년 백만 편이 넘는 논문이 쌓인다. UpToDate, Cochrane Library 같은 메타분석 인프라가 임상 결정을 뒷받침한다.


수의학은 어떨까?

종양학 분야의 많은 연구가 환자 수십 마리 규모로 진행된다. 다기관 연구는 드물고, 단일 병원의 retrospective study가 "근거"로 인용된다. 같은 질병에 대한 항암 프로토콜이 논문마다 다르고, 어느 것이 표준인지 명확히 합의된 영역도 많지 않다.


이런 환경에서 데이터로부터 학습하는 AI는 무엇을 배울까.


작은 표본은 통계적 편향을 키울 수 있다.


한 병원의 진료 패턴, 한 연구자의 선호, 특정 품종에 편중된 코호트—이 모든 편향이 데이터에 그대로 들어간다. 그리고 AI가 이 편향을 "임상적 진실"로 학습하면, 모델이 내놓는 답변은 자신감 있게 틀리기 시작한다. 수의학에서 AI가 가장 위험해지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좋은 의사는 작은 연구를 신중히 읽는다. 좋은 AI도 그래야 한다.


4. 그래서 수의사는 철학으로 진료한다

이런 데이터의 빈곤 때문에, 수의사는 결국 자신의 임상 경험과 철학으로 빈틈을 메운다.


같은 림프종 환자에게

  • 누군가는 CHOP을 권하고,

  • 누군가는 보존적 치료를 권한다.

둘 다 틀리지 않았다.


환자, 보호자, 비용, 삶의 질, 그리고 "이 동물에게 무엇이 좋은가"에 대한 각자의 판단이 다를 뿐이다.

이런 임상적 판단력은 수의학의 소중한 자산이다.

데이터로 환원되지 않는 미묘한 신호—보호자의 눈빛, 환자의 표정, 십수 년간 축적된 패턴 인식—을 한 명의 수의사가 통합해내는 능력. 이것은 쉽게 대체될 수 없고, 대체되어서도 안 된다.


그러나 정직하게 말하면, 임상의의 직관도 그 자체로는 "작은 표본"이다.

한 명의 수의사가 평생 보는 림프종 환자에는 한계가 있고, 자신이 속한 병원·지역·교육 배경의 편향이 따라붙는다.


학회에 가서야 "아, 다른 병원에서는 이렇게 하는구나" 하고 깨닫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데이터의 편향을 경계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유로, 우리 자신의 직관도 늘 검증의 대상이어야 한다.


이건 수의사를 깎아내리는 말이 아니다. 인의학의 evidence-based medicine이 의사의 임상 판단을 부정하지 않고 보강하기 위해 등장했듯이, 수의학에서도 임상의의 판단을 더 넓은 맥락 속에 위치시키는 도구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AI의 역할은 수의사의 판단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다. 판단을 더 넓은 임상 지형 위에 올려놓는 것이다.


5. 그래서 우리는 수의학 AI를 만든다

춘옥컴퍼니가 만들고 있는 것은 단순한 의료 챗봇이 아니다. 우리는 다음 세 가지를 동시에 풀고 있다.


1) 동물의 존엄성을 학습한 AI.

환자를 단순히 데이터로 보지 않고, 보호자와의 관계, 삶의 질, 고통의 무게를 함께 고려하는 모델을 만든다.


2) 수의학 데이터의 한계를 인식하는 AI.

작은 연구의 편향을 그대로 학습하는 대신, 근거의 수준(level of evidence)을 평가하고, 불확실성을 정직하게 표현하는 모델을 만든다.


3) 수의사의 판단을 확장하는 AI.

결정을 대신하지 않는다. 다른 임상의의 경험, 최신 문헌, 가능한 선택지를 한자리에 모아 보여준다.

결정은 여전히 진료실의 수의사가 한다.



춘옥컴퍼니 슬로건
춘옥컴퍼니 슬로건 - 생명을 살리는 AI
이 세 가지가 합쳐질 때, 춘옥컴퍼니는 비로소 "수의학을 위한 AI"가 된다고 믿는다.


➡️ 춘옥컴퍼니 테크블로그 글 읽어보기



맺으며

AI는 우리의 진료실에 들어와 있다.


문제는 "AI를 쓸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AI를 쓸 것인가"다.


  • 동물을 생체신호의 집합으로 보는 AI를 쓸 것인가, 아니면 동물을 고통과 존엄을 가진 존재로 보는 AI를 쓸 것인가.

  • 작은 표본의 편향을 그대로 흡수한 AI를 쓸 것인가, 아니면 근거의 수준을 함께 사고하는 AI를 쓸 것인가.

  • 수의사를 대체하려는 AI를 쓸 것인가, 아니면 수의사의 판단을 확장하는 AI를 쓸 것인가.


우리는 후자를 만들기로 했다. 그리고 그 일을 한국에서 가장 먼저, 가장 깊이 해보기로 했다.

그것이 춘옥컴퍼니가 존재하는 이유다.


허찬

춘옥컴퍼니 CEO / S동물메디컬그룹 대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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